“Augmented” 시리즈에서 나는 사진을 단순히 나의 연기(혹은 퍼포먼스)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다. 카메라를 세워놓고 스스로 퍼포먼스를 벌이는 순간은 퍼포먼스를 통해 자아의 이미지를 과장하게 되고, 그에 따라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자아의 주체에 대해서, 또 사진에 대해서 전적으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분출하게 된다. 나는 “퍼포먼스 자화상 사진”을 통해 불특정한 시간속에 존재하는 나의 여러가지 자아들을 해체하고 재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주체성을 발견한다. 또한 작가의 작업[퍼포먼스+작가가 차용한 촬영 기법(특정 시간의 연속선상의 이미들을 압축한]을 통해 단순히 일회성으로 끝나는 퍼포먼스 작업이 아닌 끊임없는 재현성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신체는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존재하며 변화하고 있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기존의 몸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속성(끊임없이 변화하며 나아가고 있는 신체의 시간 속성)에 균열을 냄으로써 여러가지 새로운 신체의 이미지를 보여주게 된다. 결국,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신체 고유의 특성을 해체함으로써(신체라는 물리적인 껍데기를 해체하는 과정)=몸에 라이트페인팅으로 해석 가능(?) + 우리의 몸은 스스로 발광하지 못하지만 라이트페인팅을 통해 광원의 일종을 만들 수 있음. 이것 또한 인간 신체 고유의 특성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과정+인간의 신체는 여러 시간속에 동시에 존재하지 못하지만 이 작업에서는 여러 특정 시간 속에 동시에 존재함. / 여러가지 모습들을 통해 각 개개인의 내면 속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자아들을 표출하고 한데 모아 놓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막연한 공포나 동경을 갖게 마련이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실제로 존재하는 피사체만 촬영이 가능하지만, 이러한 작업을 통해 비가시적인 인간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고 표현한다.

작가는 연속하는 특정 시간 속에서 빛에 비친 자신의 몸을 촬영하였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기 자신의 몸이 기존의 신체가 아닌 초월된 존재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몸을 찍는 행위는 자신의 존재를 시험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몸을 연속된 시간 공간 속에서 촬영한 각 사진들에서 작가의 형상은 신체는 없고 영혼만 있는 존재처럼 어렴풋이 드러난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사진 작업의 재료로 사용했다. 여러가지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몸의 흔적들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관람자에게, 그리고 작가 본인에게 환기시키는 부분은, 작가 본인의 물리적 현존은 빛에 비친 자신의 카메라로 촬영하는 행위와 함께 있다는 점이다. 연속된 특정 시간 속에 있는 작가의 모습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지만, 사진 속에서 작가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

집이라는 공간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에 대한 질문과 답
내가 가장 두려와 하던 것과 부딛히는 것? 옷을 벗는 행위 : 빛은 일종의 안전장치
라이트 페인팅을 하는 이유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되고 싶다
내 몸 자체가 광원이 되는 사진
몸에다가 야광 물질을 도포하고 촬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표출된 내 욕망과 자아들이 모여 작업의 아카이브를 만들고, 이러한 작업
억압되고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 빛을 일종의 안전장치로 활용한 것 같다. 스스로 빛을 낸다.
그렇다면 이 사진을 단순한 장노출로 해석할 것인가? 움직임 속 결정적인 순간들의 집합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왜 벗었는가 내 자신이 발광체